아산UBF 2016년 12월 25 성탄메시지
임마누엘 예수님
말씀/마태복음 1:18-25
요절/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Merry Christmas! 오늘 성경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근거로 아기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라고 증거합니다.
많은 언론들이 미친 사람으로 묘사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헌법을 곧 고칠 것입니다. 중국은 사드배치에 대하여 소리없이 보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라의 수출은 감소하여 수출해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수출 순위가 세계6위 에서 올해 8위로 떨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리더십과 관료들의 무능이 지속된 끝에 나라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촛불 든 사람과 태극기 든 사람들이 주말마다 광장을 채웁니다. 대통령 선거 1년 앞두고 다시 나라는 격렬하게 분열되어 싸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양들의 문제를 제대로 돕지 못하는 교회들이 속출합니다. 대학은 대학평가 앞에 긴장하고 위축되어 학생들을 올바로 돕지 못합니다.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장년들은 해고 당할까 두려워 합니다. 노후를 어찌 보내야 할지 걱정 근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별을 잃어버린 동방박사들의 마음처럼, 어둡고 차가운 베들레헴 밤하늘 처럼 우리 시대 세상도 어둡고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 붙어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는 나의 삶에 예수님을 맞이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다시 시작하여야 합니다. 2016년 성탄이 우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함께 하시는 예수님으로 채우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UBF
1. 임마누엘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된 아담의 속성을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에서 나십니다.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시지만,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는 것입니까?
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죄는 피를 댓가로 요구합니다.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려면 속량물이 실체가 있고 구체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속죄제물로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은 완전한 사람이 되셔서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속죄물이 되셨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이럴 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이 어떻게 더럽고 추한 사람의 몸이 되실 수 있는가? 그럴 리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리 없는 일입니다. 그런 어려운 일,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시고자 기어이 마리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나시는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오십니다. 우리를 다시 살게 하기 위하여 오십니다. UBF
고린도전서 15:21,22 절은 기록하였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 두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십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남편 요셉은 정혼자 마리아의 임신을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은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여자의 몸이 더럽혀 졌다고 생각하면 아주 감정적이 됩니다. 자매님들은 내 남자가 마음을 주었는가? 이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형제들은 육체를 중시합니다. 요셉은 실망감, 배신감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깊은 내면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이혼하고자 결심했지만, 이혼하더라도 마리아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하게 마리아와 헤어질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주의 천사가 계시를 통하여 요셉이 오해를 풀고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UBF
성탄 역사는 생명 역사입니다. 생명 역사는 쓰임 받는 사람의 아픔을 필요로 할 때가 많습니다. 누가복음이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와 은혜 입은 자의 수고를 기록한 반면, 유대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기록한 마태복음은 요셉에게 임한 은혜와 요셉의 감당하는 자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 역사에 쓰임 받을 때, 수고가 따릅니다. 마리아도 그랬고 요셉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역사에 쓰임받느라 당하는 고통이나 오해나 아픔이 있을 때,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사자는 누가복음에서 마리아를 도와 주었듯이 요셉을 역시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은혜로 생명 역사에 부르심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지극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역사에 부르심을 받습니다만, 그에 따르는 수고와 고난도 함께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힘으로는 고난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귀한 역사에 부르심을 입고도 감당해야 할 고통과 수고를 감당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오늘 성탄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가 직장과 가정의 여러 수고 가운데에서 성탄을 준비한다고 하였지만, 우리가 감당한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탄에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탄 찬양과 경배를 받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성탄을 복 주셔서 충만한 은혜로 가득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UBF
21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천사는 요셉에게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짓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예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몸에서 나는 예수님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는 어떤 분인가? 이 아기는 왜 태어나는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 백성들이 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극심한 고통, 이어지는 괴로움이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는 죄로 인해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우리의 육신이 죽은 후에 다시 제2의 사망,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니 우리를 제발 죄에서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정말 힘들고 괴로우니 제발 건져주세요 도움 요청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 백성들은 그러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당연히 천국 갈 것으로 여겼습니다. 심판은 이방인들이나 받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참한 죄의 노예상태로 있으면서도 그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교만에 쩔어 있는 죄인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종노릇 하면서도 의인인 줄 알며 자기의로 가득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UBF
올해 2월에 모 국립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졸업생이 있었습니다. 좋은 회사에 추천해주었습니다. 2달 전, 그 회사 전무이사를 만났는데, "어떻게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는가?" 저에게 탄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졸업생은 4년 평점이 3.8/4.5이 넘었습니다. 아무래도 실무는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 개발팀에서 아무리 가르쳐 보려고 했지만,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를 개발팀에서 생산기술팀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짤리면 요즘 취업 하기가 너무 어려우므로 어찌하든지 거기서 버티고 배워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심하여 그만 안면근육마비와 입이 돌아가는 '구완와사'가 왔습니다.
사태가 이러합니다. 대학4년을 너무 무의미하게 학점만 따고 쓸데없는 스펙쌓기 하느라 아무 곳에도 쓸 수 없는 경쟁력 없는 인재가 되어 졸업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후배들은 여전히 나이 많은 교수님의 편안한 강의, 족보만 외우면 그대로 시험이 출제되는 학점따기 쉬운 강의만 들으며 졸업학점을 채웁니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문제를 알지 못합니다. 어떤 학생은 회사에 들어 갔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고 자신감을 상실해서 국립대 4학년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맥도널드 아르바이트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선배들의 후배들인 재학생들은 자기가 무엇을 준비하며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할 줄 아는 것이 없는지 알지 못하고 졸업하여 사회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합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맨날 춤춥니다. 흔들 흔들, 건들 건들, 춤 추고 다닙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시간 내서 그런 4학년들 데려다가 공부시키고 도와주고 했더니, 여름에는 더워서 못나오겠다고 하고, 휴가 때는 놀러 가야 해서 못나오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죄인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죄인들은 자신이 죄에 빠져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죄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며 얼마나 비참한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 하시러 오셨습니다. UBF
계속해서 22,23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씀은 아하스 왕 시대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된 말씀입니다. 마태는 이 말씀의 전정한 의미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증거합니다.
말씀에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일컬어 임마누엘이라고 하십니다.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은 자기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결코 자기 죄를 버리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죄를 사랑하고 죄를 아끼고 죄를 놓지 않고 꼭 붙잡습니다. 죄인들이 죄를 죄로 깨닫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죄인들이 죄에서 놓임받기 까지는 오랜 인내가 필요합니다.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죄를 분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죄를 죄로 인식한 후에는 죄와 싸우도록 해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일이 서툴기 때문에 죄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얻도록 도와주고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죄에 빠진 죄인들은 어린 양과 같아서 목자의 인내와 눈물과 겸손이 절대적으로 필요 합니다. UBF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아주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에 깊이 찌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기심이 대단하였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기심과 욕심에서 벗어날 줄 몰랐습니다. 이기심과 욕심은 그의 인격을 못쓰게 하고 그의 삶을 못쓰게 하였습니다. 모든 관계를 파괴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신도 죄로 인하여 깊은 상처 받았습니다. 이런 그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비난하고 저주 하기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나를 좇으라" 그를 오랫동안 섬기고 감당하고 인내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셨을 때, 그의 이기적인 자아가 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셨을 때, 그의 죄악된 본성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시며 그의 모든 죄와 허물과 실수와 약점을 용서하시고 감당해주셨을 때 그는 변하여 예수님의 12제자요, 예수님 복음 역사를 계승하여 충성하는 생명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함께 하기 어려운 죄인, 오랜 인내가 필요한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죄에서 구원받습니다. UBF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은혜입니다. 요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야당 지지자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지지자들도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언론에 대하여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나라를 분열로 이끌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탄식합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취업자리가 없고, 장년들은 대출금 이자, 아이들 키우는 비용, 카드대금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가정 불화, 불안한 미래,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사는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이렇게 불안하고 괴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UBF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말씀이 전해진 것은 아하스시대입니다. 아하스는 남유다 12대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떠오르는 신흥강국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먼저 남유다를 공격했습니다. 남유다는 앗수르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앗수르는 제때에 구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남유다 12만명이 죽었습니다. 20만명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나라의 많은 재물을 빼앗겼습니다. 이 비참한 일을 당한 것은 아하스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바알 우상을 부어서 만들었습니다. 역대 유다 왕 중에서 바알 상을 만들기 까지 한 사람은 아하스가 유일하였습니다. 아하스 시대에 유다는 암몬의 더러운 몰렉에게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인신제사를 행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유다의 모든 푸른나무 아래에서 산당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참담한 유다에 대하여 아람과 북이스라엘만 침공하지 않습니다. 에돔도 쳐들어오고 블레셋도 쳐들어 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쳐들어왔을 때, 아하스에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대답합니다. '나는 구하지 않겠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않겠다'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합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는 유다로부터의 구원 요청을 받고 와서는 돕지 않고 오히려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유다왕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보물을 뇌물로 바치고 신하들의 재물까지 달라고 하여 앗수르 왕에게 바칩니다. 아하스와 그의 나라는 비참한 앗수르의 노예나라 속국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유다는 멸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의 꾀를 의지하고 끝까지 미련한 고집부린 유다는 멸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어 북이스라엘에 잡혀간 남유다 포로 20만명을 풀어주도록 하셨습니다. 죄를 지어 비참한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패한 백성이 회복될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7:14 말씀입니다. UBF
전쟁에 패하고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났다 절망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하나님은 함께 하시지 않는다 낙심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한 것은 유다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 지어 비참한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왕을 보내어 소망의 역사를 시작할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날 취업문제, 자녀문제, 진학문제, 장래문제, 건강문제, 물질문제 많은 문제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고통과 불안 속에서 어떤 사람은 내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책 합니다. 나는 별 문제 없는데, 내 주변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문제든 알지 못하는 문제든 어떤 문제가 원인인지는 나중에 알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의 절실한 것을 주시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마음이 자꾸만 아파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절대적으로 함께 계신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UBF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이었을 때부터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자기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몸으로 채찍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손목과 발목이 찢어지고, 뼈는 으스러지고, 혀는 이틀에 붙어야 했습니다. 창에 옆구리가 찔려 물과 피를 아낌없이 쏟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기목숨을 내놓으시고 아낌없이 피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임마누엘의 극치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하스와 같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심을 믿고 믿음으로 줄기차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깊은 신뢰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을 붙들고 우리는 불안과 낙심과 절망을 몰아내야 합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을 기초로 기도하면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내면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불안과 낙심과 절망을 없애 주실 것입니다. UBF
24,25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주의 사자의 방향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요셉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마리아를 통하여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심을 이겼습니다. 아들을 낳기 까지 믿음과 순종으로 성탄 역사를 동역하고 쓰임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임마누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한 아기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오늘 우리를 위하여 임마누엘 예수님이 한 아기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임마누엘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의 미래가 불안하고 나의 현재가 고통스러울 지라도 임마누엘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여 이 어둠의 시대, 고난의 강을 건너가시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방황하는 캠퍼스 양들과 함께하는 목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UBF
UBF
'성경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산_UBF 말라기_04강(말라기 3:13-4:6) (0) | 2016.12.20 |
---|---|
[스크랩] UBF_아산 말라기_03강(말라기 2:17-3:12) (0) | 2016.12.20 |
아산UBF_성탄2강(2016년12월11일_주일메세지) (0) | 2016.12.12 |
아산 UBF_성탄1강(2016년12월4일 주일메세지) (0) | 2016.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