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1일 주일메시지(아산UBF)
내게로 돌아오라
말씀 / 말라기 2 : 17 ~ 3 :12
요절 / 말라기 3 : 7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 세상이 잘 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페르시아가 왜 건재한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지을 때 방해했던 사마리아 사람들, 암몬 족속들과 모압 족속들이 왜 멸망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6년간이나 중단하여야 할 정도로 방해받고 훼방받으며 힘들게 고생하여 성전을 다 지었는데 왜 이스라엘의 영광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유다 자신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도 비난과 비방이 격렬합니다.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분열과 대립이 심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먼저 바뀌는 일입니다. 내가 빼어난 제자양성가로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내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범이 되고 좋은 영향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UBF목자로 예수님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들 자신을 새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2장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유다는 지금 불만 모드 입니다. 유다는 지금 불평이 가득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정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무엇이 그렇게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까? 유다가 생각하는 정의는 원수들이 망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 지을 때, 짓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 뿐 만 아니라 다른 이방 민족들도 유다가 성전 짓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암몬사람, 아라비아 사람들은 성전이 건축되면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가 위축될까봐 돌아온 유대인들과 그들이 짓는 성전건축을 막기 위하여 갖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 때문에 성전 건축은 16년간이나 중단되어야만 했습니다. 유다는 이들이 심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다는 사마리아와 암몬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모두 불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도 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독립하고 해방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라고 여겼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이시라면 악한 이방민족들이 심판을 하셔야 하고 페르시아는 망하게 해야 하고 유다는 나라를 번듯하게 다시 세워 주셔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정의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세상은 불의하다고 결론 내렸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였습니다. 이런 말, 이런 유다백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정말 정의는 어떤 것입니까?
3장 1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이 사자를 세례 요한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심판하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문맥을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창세기와 구약성경 여러 곳에 심판을 대행하러 나타나는 ‘여호와의 천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의 사자가 오셔서 유다 백성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정의’를 실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그토록 강렬하게 바라는 ‘공평’과 ‘정의!’ 그 ‘정의의 심판’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장 2,3절을 보십시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하나님께서 정의를 실현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오시면 누구도 그의 심판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그 행한 일과 그 마음의 중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유다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언약의 사자가 오시면 누가 긴장해야 합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입니까? 암몬 사람들입니까? 아라비아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페르시아 사람들입니까? 다시 한 번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자는 제일 먼저 레위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뜨거운 불로 금과 은을 녹여서 그속에 섞여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양잿물로 빨아서 그 더러운 때를 벗겨 내듯이 하나님의 사자가 임하시면 이방 사람들이 아니라 먼저 레위 사람들, 유다 제사장들이 더러운 죄와 불순물들을 깨끗이 털어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레위 자손들을 뜨거운 불과 강력한 잿물로 녹이고 빨아서 깨끗하게 한 다음에는 그러면 다음에는 페르시아를 멸망시키십니까? 하나님의 사자,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였던 여호와의 천사들이 누구를 심판하러 임하시겠다고 합니까? “너희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였던 무서운 여호와의 천사들은 유다백성들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온갖 죄 가운데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점치는 죄, 간음하는 죄, 거짓 맹세하는 죄, 일 시키고는 가난한 일꾼들의 급여를 떼먹는 죄, 연약한 과부와 고아를 압제한 죄, 나그네를 억울하게 한 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일체의 죄에 대하여 분명하게 판단하고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웬일 입니까? 유다는 악의 축이 페르시아 인 줄 알았습니다. 유다가 생각하는 정의는 이방민족들이 심판받고 유다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선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다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제사장들이야 말로 불로 태워 정결하게 할 대상이며, 유다 백성들이야 말로 부도덕하고 불법이 난무하고 있는 심판의 대상이라고 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시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유다 백성들의 정의는 민족적인 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정의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정의는 누군가의 멸망을 결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정의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서는 관대하거나 무감각하고 타인의 죄에 대하여서는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중적이며 모순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는 택한 백성들 가운데 세운 제사장들의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올바른 제사를 드려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유다 제사장들이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서 제사장 답게 이스라엘의 목자 답게 거룩한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의 정의는 유다 백성들이 귀신들에게 묻지 아니하고, 아내를 배신하지 아니하고 욕심과 유익을 위하여 거짓말하지 아니하며, 힘들게 일한 삯군과 보호해줄 사람없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멸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3장 7절 전반절 ‘...돌아가리라 하였더니”까지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원하시는 정의는 유다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유다가 제사장 나라, 택한 족속, 거룩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약속을 바꾸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여야 할 유다 백성들이 거룩하지 못하다고 해서 약속을 파하거나 변경하지 않으십니다. 유다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다는 하나님께로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유다가 방만하게 살고 방종을 일삼는 것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벌을 받든지 안받든지, 암몬 족속이 지은 죄만큼 고통을 받든지 안받든지, 페르시아가 멸망하든지 번성하든지 그런 일에 열을 내지 말고 유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구별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지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지금 세상에 종말이 왔다면 나는 어찌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깨끗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책잡힐 일이 없어야 하며, 우리가 먼저 흠 없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풍조는 끊임없이 비방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성토하고 규탄하고 비토하고 강하게 울분을 토합니다. 과연 이 나라에 정의가 있는가? 과연 이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인가? 대통령은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는가? 못하고 있는가? 이런 것이 우리의 관심사라면,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들 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과 잘 아는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인정 받을 만 한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다 하더라도 나의 본래 모습, 나의 실체는 하나님 앞에 서기에 합당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비난과 비방에 몰입하느라 정작 자신은 거짓되게 살아가는 모습, 비토와 성토를 일삼다가 정작 자신은 치명적인 약점과 문제점을 안고 살다가 부끄러움에 노출되지 말아야 합니다. UBF는 80년대 암흑기 때에도 시대의 풍조를 따르기보다 소감을 쓰고 우리들 자신을 깨끗게 하였으며,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유다를 향한 회개 촉구에 대하여 유다백성들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7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그들의 반문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죄인으로써의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하여 겸손하게 그 방향을 묻는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존재로써 깊은 자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리이까?”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런 반문 하는 유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봉헌물은 십일조와 함께 성소와 제사장에게 바치는 예물을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으므로 함께 가져오는 봉헌물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십일조는 유다 백성들의 영적 생활의 기본입니다.
십일조는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믿음을 담은 것입니다.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담은 것입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은 하나님의 일을 섬기느라 자기 일을 하지 못하는 레위인들과 성소의 노비들이 기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과부와 고아들에 대한 나눔을 위한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기본조차 잊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주시는 물질과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살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반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하나님을 속이다니요?’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9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 하였으므로” 유다백성이 십일조 드리지 않는 것은 한 두 사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백성 전체로 일반화 되어 있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이방인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우월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간음하고 거짓증거하고 약자를 착취하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였으며,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믿음도 감사도 일체의 사랑도 갖지 않았습니다.
9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없는 유다 백성들은 서로 상처받고 서로 상처주며 저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사회는 신뢰도 평안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과 미움과 공포가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봉헌물 조차 드릴 줄 모르는 그들의 물질 생활도 궁핍함이 가득하였습니다. 비가 올 때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비가 내려 추수할 때가 되면, 메뚜기 떼가 와서 곡식을 먹어치웠습니다. 비가 오지 말아야 할 때는 비가 와서 일조량이 감소하였습니다. 포도열매들은 썪어 빠져버렸습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3장 10, 11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소득의 십분의 일을 정확하게 매달 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라고 배웠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 이것 저것 생활비 쓰고 공과금 낼 것 다 내고 남은 돈으로 십일조 내지 말고 먼저 드리는 것이 십일조라고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은행에 가서 새 돈으로 뽑아서 드렸다는 사례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미리 준비하여서 드려야 하는 것도 충분히 듣고 배웠습니다. 이런 십일조에 대한 정의와 십일조 드리는 구체적인 사례와 자세는 과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에 대하여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십일조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담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 그것은 믿음과 감사와 사랑을 담아서 드리는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을만큼 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추수 때 애써 지은 곡식을 새까맣게 날아와 까먹고 가는 메뚜기가 없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포도나무 열매가 추수하기 전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곡식과 포도열매는 고대 사회의 돈, 물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을 약속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그들이 믿음의 사람, 감사의 사람,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철저히 징수하고 거둬들이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아름답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만방에 아름다운 백성들이 되게 하고자 하십니다. 세상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이 그들을 복되다 칭송하고 만방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도 모두 하나님의 복에 거하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복의 근원으로 축복하시고 유다 백성들을 통하여 만방에 두루 복을 나눠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남을 지적할 때, 손가락질 하는 한 손가락과 반대로 나머지 손가락들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판의식과 우리의 분노가 발산되기 전에 먼저 우리들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 감사하는 사람,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여 지는 것에 더 큰 관심과 열정을 갖고 계십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우리는 우리를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시대를 개선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을 개선하여야 합니다.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내가 변하여야 시대가 변합니다. 내가 바뀌고 내가 변하고 내가 거룩하여지지 않고는 우리의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의 열매 감사의 생활 사랑의 실천이 우리에게서 변함없이 나오고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드러내는 주의 종들을 많이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어지러운 시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들을 많이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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